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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 Volume 13(1); 2009 > Article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2009;13(1): 125-151.
The Introduction of the Concept of 'Nation' into the Koran Society and the Adaptation of Its Usage
Kue-jin Song
HK Research Professor, Asiatic Research Institute, Korea University
송규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Keywords: nation', 'kukka(國家)', 'kukmin(國民)', 'minjok(民族)', 'baeksung(百姓)', 'dcmgpo(同胞)', Sin Chae-ho

국문초록
한국에는 근대 ‘네이션’ 개념과는 다르지만 ‘네이션’ 개념의 원형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당시 한국의 사회 변화에 맞물려 근대 ‘네이션’ 개념이 한국에 수용되면서 그 개념은 변용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국가’를 의미하는 용어는 전근대부터 ‘국(國)’ 이라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었다. 다만 전근대 시기에는 ‘자주’와 ‘독립’과 밀접히 관련이 있는 주권 개념을 내포하지는 않았다. 유길준은 ‘국가’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했다. 다만 그의 국가 개념은 외부로부터의 ‘독립’만을 강조했다. ‘국가’ 개념이 널리 쓰이면서 국가를 절대화시키는 국가주의가 대두했다. ‘네이션’ 개념이 수용되면서 국가와 관련한 이론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국가유기체론이었다. 신채호도 국가 유기체론을 수용했는데 입헌공화제로 군권을 철저히 제한하려 했다는 점에서 블룬출리와 다르다. 이러한 신채호의 국가주의는 당시 한국이 일본에 강점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실효성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그의 국가론은 민족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변용되었다. 전근대 한국사회에는 통치를 받는 사람들을 ‘백성’이라고 불렀다. ‘백성’에게는 권리보다는 의무만이 강조되었을 뿐으로 근대적 ‘국민’ 개념과는 다르다. 한국에서 민권에 대한 관심은 개항 이후 발전했다. 개화파는 서구의 자유주의의 핵심개념인 자유, 권리 등의 개념을 수용하여 민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개화파는 이러한 민권은 백성에게 쉽게 줄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생각했다. 『독립신문』에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독립신문』도 민의 참정권을 부인했다. 이는 당시까지 근대적 의미의 ‘국민’ 개념이 여전히 정착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04년 이후에는 활발하게 간행된 여러 학회의 회보들에서 ‘국민’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다만 1907년까지도 ‘국민’이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주권을 보유한 근대적 의미의 ‘국민’ 개념은 신채호에 의해 정립되었다. 국가의 멸망이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신채호는 국가의 위기에 ‘국민’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국민주권과 공화주의를 제기했다. 한국은 근대 이전에 ‘종족’의식이 강하게 존재했으며 이것이 ‘민족’ 개념의 수용과 변용과정에서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민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에 한국에서는 ‘동포’라는 용어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1897년 장호익이 일본에서 ‘민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1900년 『황성신문』에 ‘동방민족’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체결 이후 ‘민족’이란 용어가 오늘날의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08년 후반기에는 국가 경계 내에 존재하는 인간 집단, 특히 당시의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간 집단을 ‘민족’이라고 지칭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채호는 ‘민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역사 서술 방법을 주장했으며 ‘정신상 국가’를 독립자주정신으로 규정하며 ‘민족정신’을 강조했다. 이러한 ‘민족정신’의 핵심은 국수(國粹)였다. 1908년 이후 ‘민족’이란 용어가 역사성을 띠게 된 것은 한국 사회를 유지시키고 통합시키는 힘이 필요했던 당시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민족’ 개념은 전근대적 정체성과 구별될 수 있는 민족정체성의 확립에 기여했으며 용어로서는 가장 늦게 출현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인에게 가장 호소력을 지닌 개념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내셔널리즘’의 번역어가 ‘국가주의’나 ‘국민주의’보다는 ‘민족주의’라는 용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주제어: 네이션 , 국가,국민,민족 , 백성,동포 ,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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