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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2005;9(1): 35-60. |
The Dispatch of Central Government Envoys (Pongmyŏng sasin) during Early Chosŏn |
Soon-nam Kim |
Post-Doctor, Brain Korea 21 The Education and Research Group for Korean Studies, Korea Univers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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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남 |
고려대학교 BK21한국학교육연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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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s:
pongmyǒng sasin, chéchálsa, kyǒngch΄agwan, the ǒsa, local control, the rule of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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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
조선초기 체찰사와 경차관, 어사 등 봉명사신의 파견은 이 시기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確固하고 强力한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에 이루어진 조치였다. 체찰사제는 왕과 직결되는 재상급 중앙 관료를 지방의 실제 현장으로 파견하여 국가 중대사를 처결케 하였던 국정운영방식이었다. 또한 경차관은 당하 중앙관의 파견을 통하여 지방의 부세 징납 활동을 포함한 여러 실무를 담당케 하면서 관찰사를 보완하고 지방 수령을 감시하고자 고안된 존재였다. 어사는 지방 수령의 대민 활동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불법 활동을 적발함으로써 그들을 경계하고 자숙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 고안된 방안이었다. 즉, 체찰사제의 운영과 경차관, 어사의 파견 등은 이 시기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의 구축 의지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양상으로서, 이러한 체제의
구축을 위한 노력의 선상에서 강구된 조치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선초기 봉명사신의 파견을 통하여 이 시기 도제가 확립되어 관찰사-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질서가 체계화되는 가운데, 지방에 대한 통치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정책 수행의 효율성을 제고시킴으로써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훨씬 강력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조선의 통치체제는 王을 권력의 정점으로 하여 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였다. 이런 이유로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이 모두 왕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체찰사나, 경차관, 어사는『經國大典』에 등재된 공식적인 관직은 아니지만, 왕과 직결되어 그의 의지를 지방의 통치 현장에 실현하기 위한 존재였다. 이들의 존재는 이 시기 중앙에서 지방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기울인 적극성과 능동성의 일단을 확인시켜주는 충분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조선초기의 국가적 발전은 이러한 체찰사제의 운영과 경차관, 어사 등의 파견을 통하여 크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시기의 발전은 중앙의 宰相級 要職者와 그 실무를 담당한 당하관이 정규의 지방통치체제를 뛰어 넘어 언제나 군국중사의 지방 현장에 나아가 직접 현안을 처결하고, 그들이 국정을 이끄는 최고의 지위에 올라 높은 경륜을 펼치는 가운데 성취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들 봉명사신의 파견은 조선초기 국가 통치체제와 관련하여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
주제어:
봉명사신, 체찰사, 경차관, 어사, 지방통제, 국가통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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