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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 Volume 14(1); 2009 > Article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2009;14(1): 91-124.
The Development of Royal Tombs in Silla
Geun-jik Lee
Professor, Dept, of Cultural Heritage Studies, Gyeongju University
이근직
Keywords: royal tombs, Silla’s royal tomb system, generic royal tomb, the structure of the hoseok, support stone to the hoseok, the twelve zodiac animal signs (sibijisinsang),myeonseok, taengseok, cremation

국문초록
고대 한국사회에 있어 왕릉은 봉분의 규모에서 왕족 또는 신하들의 묘와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독자적 위상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라 왕릉 역시 무덤 내부에 마련된 부장품과 함께 봉분을 장식한 호석(護 石) 및 능전에 배치된 석물(石物)등에는 당대의 정치·경제·사상·문화의 총체적 양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신라가 건국하는 기원전 1세기부터 고대국가가 완성되는 기원후 5세기말에 이르는 기간인 상고기(上古期)에 수많은 고분이 축조되었으나 외형적으로는 능묘의 구분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즉 상고기에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목관묘(木棺墓) → 목곽묘 (木槨墓) →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순서로 조영되었으나 무덤내의 출토유물을 통해 특정묘를 수장묘 또는 최고지매층의 묘로 추정할 뿐 이들 고분의 외형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왕릉만의 고고학적 특징이 확인되지않는다. 그러나 율령(律令)이 반포(頒布)되고 신라만의 고유한 신분제도인 골품제(骨品制)가 근간을 갖추기 시작한 6세기 초의 중고기(中古期) 법흥왕(法興王)부터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신라 사회는 능과 묘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조영(造營)하기 시작하였다. 즉신라 능묘제도의 시원적 형태가 등장하는 6세기 초에 조영된 서악동고분군(西岳洞古境群)에 이르면, 능묘에 대한 인식의 구분없이 동일한 규모로 경주분지내에서 고분군을 형성하던 이전과 달리 피장자의 신분에 따라 능역(陵域)과 묘역(墓域)으로 분리하여 조영된다. 또한 왕릉은 봉분의 규모와 입지조건에서도 이전 시기와 달리 묘인 고분과는 확연하게 구분되었으며, 동시에 신라왕릉만의 모습을 서서히 갖추기 시작한다. 뒤이은 삼국시대 말기이자 통일초인 7세기 왕릉의 호석구조는 십이지신상을 호석구조의 일부분으로 채택하는 8세기의 전성기 왕릉으로 가는 과도기 형태를 띠는 발전기로 주목된다. 즉, 무열왕릉의 호석구조부터 고구려 고분의 영향인 받침석이 추가로 호석에 설치되며, 능전의 석물에서는 중국 당(庸) 능묘제도의 영향을 받아 상석(床石)과능비(陵牌)가 등장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부터 왕릉과 묘의 호석구조에 사용된 석재는 다듬은 정도가 다르게 된다. 또한 통일기인 8세기 중엽에 이르면 신라 왕릉은 왕즉불사상(王卽佛思想)을 구현(具現)하기 위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산치대탑과 같은 인도의 불교문화와 함께 당의 능묘제도를 받아들여 호석구조와 능의석물(陸儀石物) 배치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를보여 주고 있다. 즉 왕릉의 봉분자락에 배치한 호석구조인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및 난간석(欄干石)이 배치되기 시작하였으며, 왕릉 전면에도 능의석물(陸儀石物)인 석인(石人)·상석(床石)·석사자상(石獅子像)·능비(陸碑)등이 왕릉주변 및 능역을 장엄하게 된다. 이처럼 화려한 신라의 능묘제도는약 1세기 동안 유지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9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신라 왕릉은 규모의 축소와 더불어 외형도 통일초인 7세기 후반 내지 삼국말기의 형식으로 쇠퇴하고 있다. 이러한 말기현상은 9세기 말부터 10세기 전반에 이르는 여섯 왕 가운데 네 명이나 화장으로 왕릉을 조영하지 않으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주제어: 왕릉,능묘제도,능원제도,전칭능묘,호석구조,받침석,면석,탱석, 십이지신상,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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