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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 Volume 14(1); 2009 > Article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2009;14(1): 59-90.
Changes in the Silla Capital’s Road and Urban Structure
In-ho Hwang
Jungwon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황인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Keywords: bangrije (坊里希!)),roadbed, uniform subdivision method, block-type unit

국문초록
본고에서는 경주에서 발굴된 도시유적 가운데 공간분할체계를 가장 잘 반영하는 왕경 도로를 중심으로 계획도시화에 따른 왕경 개편 양상 및 도시구조의 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신라는 율령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황룡사(皇龍寺) 창건단계부터 새로운 개념의 방리제(坊里制) 를 적용하여 실절적인 수도 정비를 시작하였다. 이때 바둑판 형태의 도로망을 설치하고 규격화된 방격가구(方格街區)를 새롭게 편성하였는데, 이것은 피지배층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귀족세력의 견제 등 많은 어려움이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계획도시의 건설은 일시에 왕경 전역에 결쳐 이루어지지 못하고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초창기에는 왕성(王城)인 월성(月城)을 남쪽 중앙에 두고 서쪽의 능묘(陵墓)지구와 대칭되는 황룡사 주변 지역에 대한 소규모 도시정비가 이루어졌다. 황룡사는 1단계 도시계획의 틀과 유기적이며, 그 위치나 규모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초기 도시설계의 거점시설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통일 이후에는 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복속된 국가로부터의 인구 유입이 늘어나는 등 왕경 확장의 필요성에 따라 최소 2차례의 확대 개편이 이루어졌다. 먼저 별궁(別宮)이었던 북궁(北宮, 城東洞 殿廊址) 을 중심으로 계획도시가 확대되었다. 이때 월성의 위상이 축소되거나 기능을 상실했다기보다는, 당시 유행하던 통일제국들의 도성모델을 새롭게 채택하여 한층 격상된 위엄을 대내외적으로 표출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최종적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던 8세기 이후에는 외곽지역까지 규모가 축소된 시가지를 확장하는 동시에, 부분적으로 토지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형 조건에 맞춘 변형된 공간분할이 실시되었다. 이곳에는 주로 소형 주거지나 소규모 생산단지가 배치되었기 때문에 왕경 중심부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양상이 확인된다.
주제어: 방리제(坊里制), 도로부지(道路敷地), 균등분할방식, 방격가구(方格街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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