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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 Volume 12(1); 2008 > Article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2008;12(1): 113-132.
The Kŭn’gi Namin Faction’s Acceptance of the T’oegye School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Sŏngho School
Hangsu Sin
Korea Institute for Curriculum and Evaluation
신항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Keywords: Yi Ik, Sŏngho school, Doctrine of Yi Hwang, Yun Hyu, genealogy

국문초록
이익 가문의 학문은 17세기까지 북인 계열의 윤휴와 상당히 유사하였다. 이하진이나 이잠 형제, 조하주 등은 윤휴와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반면 뒷날 이익이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는 허목과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거리가 있었다. 이때까지 이익 집안의 학문은 성리학적 흐름과는 무관하였으며, 오히려 주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일변하였다. 1699년 이잠은 정시한을 예방하여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는 퇴계학 수용의 증거이다. 이서는 주희의 경전 해석을 따르면서 이황의 학문을 수용하였다. 이익 단계인 1710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이기심성론과 관련된 저술을 하면서 학파를 개창하기에 이르렀다. 퇴계학을 수용하고 이기심성론과 관련된 성과를 낸 이익은 이제 이황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하였다. 1715년에서 1720년 사이 이익은 전대에 거리가 있었던 허목과 이하진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허목을 자신이 사숙한 스승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퇴계학으로 자정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근기 남인들에게 수용되었다. 한편 이익은 허목의 후학으로 자정한 이후에도 경전해석이나 경세론 분야에서는 여전히 윤휴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전통적인 윤휴와의 계통을 강조하였는데, 이들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학문 경향을 보였다. 윤휴를 강조하던 인사들이 신유 박해로 몰락하면서 성호 학파의 학통은 오로지 퇴계학과 관련된 내용으로 전승되게 된다. 정리하자면, 북인계 학문의 전통을 가진 윤휴에게 영향을 받은 성호 학파는 지속적으로 퇴계학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고자 하였으며, 이는 18세기 후반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완성되었다.
주제어: 이익, 성호학파, 퇴계학, 윤휴,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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