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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 Volume 8(1); 2005 > Article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2005;8(1): 223-242.
Korea and the Koreans in the Russian press of 1904-1905
Igor Ermachenko
Lecturer, Saint Petersburg National College of Education
이고르 예르마첸코
성페테르부르그 사범대학
Keywords: Russo-Japanese War, Russian Press, Image of Korea, Ambiquity, Fatalism

국문초록
러일전쟁이 러시아 사회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부각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 관련 연구서들과 학술탐사보고서를 포함한 주목할만한 개설서들이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동아시아에서 서구열강의 세력권 확보를 위한 각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1900년 러시아 재무성은 1,250페이지 분량의 3부로 구성된 방대한 기초 연구서인 “韓國誌(Описание Кореи)”를 출간하였는데, 이는 당대의 여타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에게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극동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이 이상한 나라” 한국이 일반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바로 이 전쟁 덕분이었다. 러일전쟁(1904-1905) 시기 러시아의 언론에 비친 한국은 교전 상대국 일본과 주요 전장이었던 만주를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이나 저널에 남아있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기록은 한국의 독특함에 대한 러시아 사회의 폭넓은 관심을 보여준다. 이 같은 독특함은 일본과 중국에 대한 묘사와 비교를 통해서만이 완전하게 평가될 수 있는 바, 그 차이점은 양면성이라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초기에는 교활하고 남의 흉내를 잘 내는 동양인의 모습과 의협심이 강한 일본의 적대자라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 다음 단계에서는 무고하게 고통당하고 있는 평화로운 주민의 모습과 혐오스러운 마적떼, 잠재적인 적국, 황화를 초래할 수 있는 가상의 적국 가운데 하나라는 모습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였다. 따라서 러일전쟁 직전과 개전초기의 상황을 통해 나타난 러시아의 한국인식에 대한 전통을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쟁초반 러시아 언론에서는 한국을 당연한 중립국가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중립에 관한 국제적 협약(시모노세끼 조약, 영일동맹 및 러불선언의 조문들 1902년)을 위반한 일본이 불법적으로 한국을 무력간섭함으로써 고통받고 있는 국가로 그리고 있었다. 이와 유사한 논조들은 육군성과 외무성의 공고문 및 훈령들을 게재한 공식적인 신문들이나 저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한제국 정부의 입장과 민중들의 성향간의 차이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대체로 이 둘을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정기간행물에 소개된 1904년 2월 6일자 만주군 임시사령관 린네비치 장군의 전문에는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신뢰와 호의를 보이고 있고, 러시아가 일본보다 강하다고 말하곤 한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한반도에 대규모 일본군이 상륙한 직후, 한국인 가운데 일부가 러시아 국경으로 달려와 러시아 육군지휘관들에게 일본군의 동정을 알려주었다는 언론 보도 역시 이 같은 평가에 기여하였다. 이후 한국인들의 정보제공에 대한 기사들은 지속적으로 게재되었다. 그러나 1904년 2월 9일자 외무성 회람문에서도 강조되었던 바와 같이, 러시아정부는 일본이 한국을 불법적으로 점령한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명의로 생산되는 모든 훈령과 공고를 무효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유력한 신문의 주필들 역시 유럽열강의 전함들이 제물포로 파견된 명분이 되었던 무질서를 떠올리며 이미 러일개전 직전부터 한국 정치상황의 총체적인 불안정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더욱이 여러 차례 일본인 첩자들이나 유격대원들이 한국인의 전통복장으로 갈아입고 그들의 임무를 수행해왔던 사실은 한국인들을 보다 조심스럽게 대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개별적으로 수집된 군사정보 속에도 일본을 위해 간첩활동을 한 한국인에 대한 소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러일전쟁 초기 러시아 언론에 나타난 한국인식은 양면성이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한국인들은 그들과 커다란 상관이 없는 외국의 분쟁에 휘말린 사례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러시아 여론의 동정과 공감을 얻고 있었다. 이 같은 여론은 예술문화 관련 저널에 실린 기사들을 통해 보다 확산되어 갔는데, 그 주인공들은 전쟁의 잔혹함에 몸으로 부딪힌 평화로운 한국인들이었다. 특히 눈에 보일 듯이 전쟁의 일화를 묘사한 울프슨의 작품 속에서 한국인의 모습은 일본과 중국인과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억울한 감정은 그들을 흘러넘칠 정도로 과도하게 평화 애호적으로 만든 점과 일본에 대해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함과 수동적 애국주의를 대비시키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울러 그의 저작에서는 한국인의 무능함과 수동성의 기원을 종교적 전통인 숙명론에서 찾고 있었다. 특히 한국인 주인공이 일본인들에게 보인 도덕적인 저항과 이에 대한 강조는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질 정도로 당연시되었다. 한국과 관련된 주제들을 예술적으로 묘사한 대부분의 경우들은 惡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하면 안 된다는 톨스토이의 원칙과 논쟁해야할 잠재적인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아울러 한국인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반전론을 얘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러시아 언론에서 한국의 역사과 문화에 대해 언급한 것은 멀리 떨어진 이상한 나라에 대한 소개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 사회로 하여금 자신의 문화 전통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주제어: 러일전쟁, 러시아언론, 한국인식, 양면성, 숙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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