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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2005;8(1): 53-83. |
Main Points of Contention in Terms of the Studies on Tan'gun and Kojosŏn |
Bup Jong Cho |
Professor, Dept. of Historical Education, Woosuk Univeris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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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
우석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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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s:
Kojoson, Tan'gun, Kija, Wiman, , Wanggomsong, Four Chinese Commanderies, Debate over the location of the capital area of Kojoson, Chinjangsong, P'aesu, Koguryo, , Han, Ye, Wae, , , , Chumong, Bohai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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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
고조선(古 麵 )은 한국사의 첫 국가로서 한국사의 인식체계에서는 ‘단군(植君)’, ‘기자<宾구)’,‘위만(衝南)’ 등 3개의 성격을 달리하는 존재와 연결된 정치체가 계 기적으로 고조선으로 통칭되는 역사를 구성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고조선의 역사를 전하는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중심으로 한 (삼국유사〉,<제왕운기〉둥 기록과 국가적 성장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중심이 된 (사기〉와 <삼국지〉가 인 용 한 《위략〉기록 등에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고조선과 관련된 고 고학적 문화양상은 비 파 형 동 검 및 지석묘(支石墓)와 石棺»로 대표 되는 « « 文化를 필두로 철기문화단계까지 연결되고 있다. 이같은 문화는 中 國系 w ish 文化와는 구별되는 遼東半島,東北滿洲 및 韓半島에 분포하였다. 특히 중국과는 春秋.戰國Bfft 및 秦 ■?*교체기에 朝鮮이란 존재로 다양한 정치세력과 조우하였다. 또한 衡 辭 »시 대 를 전후하여 甸奴로 대표되는 騎 馬 力 과 의 교류도 있었다. 이같이 고조선은 이들과의 정치, 군사, 경제적 교류 속에서 다양 한 형태의 경험을 축적하였으며 정치적 성쇠과정을 통해 중심지와 영역의 변화 도 수반되었다. 고조선문제에 있어 가장 많은 논란과 쟁점이 부각된 문제는 中 心地문제였다. 이는 고조선의 중심지가 한반도 특히,平壤이 고조선의 중심지였 다는 平壤中心說과 遼東지역 遼河 또는 * 凌河를 중심한 지역이 고조선의 중심 지로서 존재하였다는 遼東中心m 로 그리고 요동지역에서 대동강지역으로 이동 하였다는 이동설로 나뉘어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른 패수,왕검성 위치 등의 역사지리논쟁이 고조선문제에서 여전히 남아있다. 한편,고조선은 위만조선단계에서 si과의 대결구도속에 전쟁을 통해 정치적 붕괴와 한 군현체계에 의한 통제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 고구려 등에 의 해 축출되고 친중국적 토착세력과 연결된 낙랑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고조선은 후대 역사체에 의해 계승되었다. |
주제어:
고조선,단군,기자,위만,<제왕운기>, 왕검성,한군현,고조선 중심지논 쟁,진장성,패수, 고구려,험독현,<응제시주>, 한국, 예국, 왜국, 규원사화,환단 고기,단기고사,주몽, 발해, 삼국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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